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주었으면, 그림책을 읽으며 나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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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 한국을 뜨겁게 한 크라우드 펀딩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성우 이용신이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정식 OST 앨범 발매 펀딩으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이 소재가 되자 정말 뜨겁게 타올랐다.


 당시 펀딩 금액의 목표액은 3,300만 원이었다. 하지만 펀딩 모집 결과는 무려 20억에 달하는 금액이 모이면서 밀레니얼 세대가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 한구석에 아이가 남아있던 거다.


 가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어른이 되어서 어릴 적에 보았던 걸 다시 만나면 무언가 마음에 와닿는 게 무언가가. 우리 밀레니얼 세대가 <달빛천사>라는 애니메이션 15주년 기념 정식 OST 앨범 발매 펀딩에 환호했던 건 그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이 준 추억이 가슴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달빛천사>라는 애니메이션은 병으로 인해 목소리를 잃어가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를 만나 꿈꾸던 노래를 하며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날 어른이 된 우리가 많은 걸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때때로 어릴 적에 보았던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 잊고 지낸 꿈에 대해 떠올리고는 한다. 한때 만화 속 주인공처럼,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내 꿈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우리가 어느새 현실과 타협해서 고이고이 꿈을 접어두는 모습은 착잡하게 느껴진다.


 이번에 읽은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책의 저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림책을 통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봤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이후 아이를 위해서 그림책을 사서 읽어주면서 문득 아이보다 더 동화책에 마음이 이끌리는 자신의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나는 텅 빈 집안에서 서성이며 내 마음대로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 너머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몇 글자 되지 않는 짧은 문장 뒤에 가려진 마음들을 읽었다. 나는 그림책 속 아이가 되었다가 여우가 되었다가 트랙터가 되기도 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앞에 서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기도 했고 책 속의 토끼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으며 외할머니의 주름살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피식 웃으며 책장을 넘긴 그림책을 어느 날엔 눈물을 뚝뚝 떨구며 읽기도 했다. (본문 8)


 저자가 다시 읽기 시작한 그림책은 여전히 많은 여백과 그림이 있고, 짧은 글이 있는 그림책이었다. 어릴 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다시 그림책을 읽으니 그 여백과 그림, 짧은 글을 통해서 오늘의 나를 위로하거나 혹은 웃게 해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한 거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책은 그렇게 다시금 그림책을 읽어보면서 저자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느끼는 여러 감상이 적혀 있다. 그 감상은 다시금 사랑을 떠올렸다,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았다 같은 추상적인 감상이 아니다. 그 감상은 바쁜 일과 속에서 놓쳐버린 일상이었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주었으면’이라는 문장에 들어간 토끼는 코리 도어펠드의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책에서 등장한 토끼를 가리키고 있다.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책에 등장하는 토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인공의 말을 들어주며 함께 있어 주었다.


토끼는 낙심한 테일러에게 조심조심 천천히 다가간다. 말없이 체온을 나누어 주는 토끼에게 테일러의 마음이 열린다. 테일러는 토끼에게 자기에게 생긴 일을 이야기한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화도 냈다가 웃기도 한다. 토끼가 한 일은 테일러가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하고 싶을 때 들어준 게 전부였다. 테일러가 자기 안의 혼란과 낙심과 분노를 풀어 완전히 녹여낼 때까지, 그리고 용기를 얻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테일러 곁을 떠나지 않는다. (본문 41)


 우리는 살면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는지 문득 느꼈던 적이 있을 거다. 저자는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주인공 테일러와 토끼를 통해 가만히 곁에 있어 주고, 기다려 주고, 들어주는 이가 오늘날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묻는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책은 그렇게 한 편의 그림책을 통해 느끼는 감상을 천천히 풀어낸다. 어떤 그림책 속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하기도 하고, 어떤 그림책 속 주인공 모습을 통해 과거의 나를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그림책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작은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도 멈추지 않을 거라고, 느리지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고 애쓸 거라고, 삶은 원래 그런 거니까. 황량한 옥상이 꽃으로 뒤덮이고 무뚝뚝한 외삼촌이 웃기 시작하고 썰렁했던 골목길 작은 빵집에 손님들이 몰려들고 리디아는 집으로 돌아갈 것처럼, 리디아가 할머니와 다시 만나 햇볕이 쏟아지는 뜰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안도한다. (본문 158)


 그림책, 만화, 애니메이션은 우리에게 아직 ‘어린애나 보는 거’라는 작은 편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그림책, 만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우리는 상처 입으며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고, 오늘의 일상을 온전하게 즐길 수도 있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주었으면>이라는 책의 저자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놓쳤던 일상을 되찾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오늘을 재차 시작하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요즘은 성인을 위한 그림책도 다수 발간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을 위한 그림책이든, 아이를 그림책이든 뭐가 중요할까?


 그저 한 편의 시집을 읽는 것처럼, 한 편의 작은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그림책이라도 마음이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 굳이 그림책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오늘 읽고 싶은 글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는 조심히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주었으면>이라는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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