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은 소설 '배를 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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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진지하게 글 한 편을 쓰려고 할 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어떤 말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을 어떤 형태로 쓰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상대방에게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유명한 작가는 아직도 국어사전을 곁에 두고 말의 뜻을 찾아본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단어의 뜻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일일이 손으로 넘기면서 그 와중에 우연히 손이 닿는 어떤 말에 마음이 이끌리는 경험은 검색을 통해 할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를 책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막상 내가 글을 쓸 때는 괜스레 국어사전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말은 내가 잘 표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괜스레 어려운 말 혹은 낯선 말을 찾아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아마 국어사전을 찾아봤던 거는 아주 오래전의 초등학교 시절이지 않을까 싶다. 그 이후 국어사전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용한 건 어떤 말을 글로 적다가 오타를 뜻하는 붉은 색 줄이 그어졌을 때 ‘어라? 이게 맞춤법에 어긋난 건가? 내가 이상하게 알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국어사전’이라는 걸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고, 솔직히 말해서 오늘 읽은 어느 책 한 권을 읽을 때까지 ‘국어사전’이라는 말 자체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경우가 무척 적었다. 오늘 읽은 <배를 엮다>라는 책 덕분에 나는 잊고지낸 말과 국어사전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만화 <배를 엮다>는 저자 미우라 시온의 원작 소설을 소설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쿠모 하루타가 만화로 그린 작품으로, 사전을 만드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드는 형태로 잘 그리고 있다. 덕분에 만화 <배를 엮다>를 읽는 내내 ‘말’이 가진 힘과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 <배를 엮다>도 오래전에 구매해서 책장 한구석에 꽂아두고 있다. 하지만 다른 소설을 먼저 읽다 보니 자연스레 <배를 엮다>라는 책은 계속해서 읽지 않게 되었고, 언젠가 돈이 너무 부족해서 중고 서점에 가져다 팔 생각까지도 했다. (나는 책을 조금씩 팔면서 또 책을 구매해서 읽는다.)


 그런데 소설 <배를 엮다>를 집어 들었을 때 뭔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을 중고 서점에 판다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나와 맞지 않는 책은 금방 팔아버리지만,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았음에도 <배를 엮다>는 차마 중고서점에 팔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읽을 때가 오리라 생각해 책장에 꽂아두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소설 <배를 엮다>를 꺼내서 읽을 시간은 나에게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늘 2019년 9월 16일, 만화 <배를 엮다>로 대신해서 소설 <배를 엮다>의 이야기를  비로소 읽을 수가 있었다. 참, 책을 구매하고 책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왜 제목이 ‘배를 엮다’인지 알지 못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곧바로 제목이 가진 의미를 알 수가 있었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사람들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해수면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적합한 말로, 더 정확하게 생각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야. 만일 사전이 없다면 우리는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서성일 수밖에 없어."

"그 바다를 건너기에 적합한 배를 엮자. 그런 마음을 담아 아라키 씨와 내가 붙인 이름이에요."


 어떤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화이팅 넘치게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고, 어떻게 보면 조금 삭막한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저 덤덤히 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힘을 쏟는 한 인물의 꿈이 다른 이에게 전해지고, 또 다른 이에게 전해져 모두가 함께 열정을 쏟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모두가 열정을 부딪히며 한 가지 일에 푹 빠지는 모습은 희로애락이 크게 그려지지 않더라도 소소한 부분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말주변이 짧아서 이 부분에 대해 잘 말할 수가 없다. 어쨌든, <배를 엮다>라는 책을 읽어보면 괜스레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빠지게 된다.



 내가 읽은 건 소설 <배를 엮다>가 아니라 만화 <배를 엮다>이기 때문에 소설의 재미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만화로 <배를 엮다>를 읽으면서 소설 <배를 엮다>도 한번 읽어보고 싶었지만, 쉽게 소설 <배를 엮다>에 손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설은 이야기가 너무나 방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화 <배를 엮다>는 어느 정도 그림으로 글을 대신하는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제법 많은 양의 단어가 대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깊이 말에 공감하거나 혹은 말이 가진 힘에 공감하며 만화를 읽었다. 하지만 오로지 글로 다루어질 <배를 엮다>를 상상하니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분명 소설 <배를 엮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상태에서 나는 도저히 소설로 <배를 엮다>를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만화로 <배를 엮다>를 읽은 것에 만족하고, 차후 다시 시간이 난다면 소설 <배를 엮다>를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비록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똑같은 주제로 똑같은 이야기를 그린 만화 <배를 엮다>. 글과 그림을 통해 조금 더 가깝게 <배를 엮다>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말에 대한 힘과 깊은 뜻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참, 좋은 책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책과 글(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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