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인이 똑같다는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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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정치인은 똑같아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그래도 다르다


 진보 진영에서 누구보다 진짜 정치를 추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 이후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노회찬 의원이 4,000만 원을 받았다는 걸 시인하는 유서를 남기면서 일각에서는 ‘역시 정치인은 다 똑같다.’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노회찬 의원은 유서에서 4,000만 원 수수 혐의를 인정했지만, 그 돈이 절대 정치 청탁을 위해서 받은 돈이 아니라고 한사코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은 살았을 때도 당시 드루킹과 공진모 회원에게 받았던 돈은 강연료와 자발적인 후원금이라고 했고, 그의 실수가 있다면 후원금으로 신고를 하지 않은 거다.


 고 노회찬 의원의 유서에는 이러한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는 일도 적혀있었다. 현역 시절 노회찬 의원은 많은 사람이 알 정도로 깨끗한 정치를 추구한 사람이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가장 먼저 주장하고 나섰고, 어느 당이 사실상 파업을 하면서 국회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세비를 반납하기도 했다.


 우리는 노회찬 의원을 통해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 보았고, 나태와 태만이 넘치는 국회에서 그래도 제대로 된 한 명의 의원을 보았다. 당을 옮기거나 주장을 여론의 흐름에 따라 바꾸는 다른 철새 정치인과 달리 한결같은 노회찬 의원의 소신은 그가 몸담은 정의당에 대한 호감과 지지율이 되어 나타났다.


 조금 더 나은 정치, 조금 더 정치다운 정치를 꿈꾸는 시대에 노회찬 의원 같은 인물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꿈같은 이야기다. 이렇게 떠나보낸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은 너무나 안타깝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이나마 저항하기 위해 ‘그래도 그는 달랐다.’고 말할 뿐이다.


청와대 견학 당시 찍은 사진


 노회찬 의원의 비보가 들린 날에 버스 터미널에서는 몇 명의 중년 아저씨가 열심히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한 아저씨는 “지가 떳떳하면 끝까지 살아서 밝히면 될 걸, 왜 뛰어내려? 이놈은 좀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다 똑같네.”라고 말하며 노회찬 의원을 비난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심 너무 불편했다.


 “뭐가 똑같아요? 다른 놈들은 수십 수백억 단위로 처먹고도 잘 살면서 반성을 하나도 안 하는데, 노회찬 의원은 자신이 저지른 작은 실수를 인정하면서 하늘이 보기 부끄러워서 이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잖아요! 징역 몇 년 살고 나와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놈들보다 낫잖아요!”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모든 정치인은 똑같다는 논리는 생각 없이 정치인을 우습게 여기는 일이다. 물론, 정치가 시민의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반영해서 모두가 고개를 만족할 결과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정책을 추진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 급진적인 사람들은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이제 손바닥 뒤집듯이 나라를 바꿔보자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건 배신이야!’라며 고래고래 고함치며 마치 장난감 앞에서 떼쓰는 아이처럼 행동한다.


 이 상황에서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더니 다 똑같네!’라고 말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든 정치인을 똑같이 대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돌연히 태도를 바꾼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 정치는 달라질 계기를 맞아도 전혀 달라지지 못하고 있는 거다.



 나는 “다 그놈이 그놈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놈이 또 당신이다. 딱 시민이 그 수준이니 정치인도 그 수준이 아닐까?”라고 따져 묻고 싶다. 정치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조금씩 바꾸며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수 있는 게 정치였다면, 지금 세계가 공통으로 겪는 무역 전쟁을 비롯해 갖은 갈등은 정권이 교체되는 것만으로도 상당수가 해결되었을 거다. 정권이 교체되고 여소야대가 바뀌어도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정치인들이 대변하는 사람들의 이익은 항상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노회찬 의원처럼 진짜 시민을 생각하면서 앞장서서 특권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정치계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고, 때때로 너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 요구하는 바람에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기도 한다.


 우리가 떠나보낸 노회찬 의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정치인은 다 똑같다고? 물론, 겉으로 보기에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을 파 보면 ‘어떤 신념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가?’를 통해 전혀 다른 행보를 하는 인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노회찬은 누가 뭐라 해도도 자신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노회찬 의원이 우리 정치와 사회에 제시한 건 단순한 이상이 아니다. 장차 우리가 실현해야 할 과제이자 아직은 손이 닿기 어려운 미래였다. 그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의 정치 신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나는 “다 그놈이 그놈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정치와 시민 사회의 발전이 없을 것 같아 앞이 깜깜하다.


 부디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시민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모든 정치인이 똑같이 보인다면, 그건 우리 시민도 그 정치인과 똑같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얼굴을 돌리며 외면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우리는 더 좋은 선택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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