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언어에 숨은 이야기를 읽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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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교 대표 강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우리가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외모를 통해 '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다.'이라는 평가를 잠재적으로 내린다. 어떤 사람은 '난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거의 모든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고 한다.


 나처럼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래서 더 다른 사람 앞에 서게 되는 것이 무섭다. '이런 엉터리로 꼬인 성격과 엉터리 같은 외모로 무엇을 나서서 할 수 있겠어?'이라는 생각이 괜히 주눅이 들게 하고, 다른 사람과 쓸데없이 비교하면서 더 위축되어 이성 앞에서 '어버버' 하게 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확실히 우리는 초면인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외모로 판단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그 사람의 언어 행동을 통해 좀 더 명확히 그 사람을 판단하는 판단 기준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사용하는 말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만회 가능!)


 괜히 우리 사회에서 '불조심 말조심'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듯,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의 숨기고 싶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리 화술의 달인이라고 하더라도 종종 나오는 말 속에 곁들여진 자신의 품성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중요하다.


ⓒ골든 타임(애니메이션)


 그래서 우리 대학 강의나 도서 시장에서는 '사람의 말'과 관련한 분야가 상당히 많다. 사람의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심리를 추리하고, 그 사람과 비즈니스 관계를 유리하게 끌어가는 법은 이미 자기 계발분야와 마케팅 분야에서 반드시 익혀야 하는 부분이 되었다. 연애 관계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언어에 대해 접근하는 책을 자주 읽다 보니 나는 종종 주변에 놓인 음식의 이름이 가진 유래가 궁금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다. 어떤 가게의 이름은 서촌길에 있다고 해서 '서촌길 돈까스'이기도 하고, 어떤 가게의 메뉴는 쓸데없이 많기도 하고, 어떤 가게의 메뉴는 쓸데없이 설명이 길기도 했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최초 평가 기준을 외모로 잡듯이, 우리가 먹는 음식과 가는 가게의 결정도 우리는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가게에 가서 '진짜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 샐러드'이라고 적혀있는 메뉴와 '유기농 채소 샐러드'이라고 적혀있는 메뉴로 나누어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여러 음식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메뉴를 적는 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그 비밀이 알고 싶어서 <음식의 언어>이라는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냥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다 우연히 눈에 들어왔는데, 책은 그간 음식점에서 품었던 크고 작은 의아함을 해소해주었다.


음식의 언어, ⓒ노지


 책 <음식의 언어>는 말 그대로 우리가 평소 이용하는 다양한 음식점(이 책은 레스토랑이 중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 메뉴에 사용된 이름의 유래와 지금까지 오면서 겪은 변화 과정,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사회적 의미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소 지루해도 그래서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일단 무엇보다 먼저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아래의 글은 책의 첫 장에서 읽을 수 있는 한 부분이다.


언어학자 마크 리버먼은 우리가 이런 과잉언급을 '지위 불안'의 징후로 여긴다고 주장한다. 값비싼 레스토랑은 잘익은(ripe)이라는 단어(또는 신선한fresh이나 바삭바삭한crispy)를 쓰지 않는다. 잘 익어야 하는 음식은 당연히 잘 익었으리라고, 또 모든 식재료가 당연히 신선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은 그곳이 충분히 근사한 곳이 아니어서 손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거듭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변명이 너무 많다. (p44)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조금씩 인기를 더하는 레스토랑 형식을 갖추면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형식을 가진 음식점에서 리버먼이 이야기한 징후를 정말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쓸데없이 '신선한 양배추와 방울토마토를 이용한….' 문구를 붙은 메뉴가.


 그래서 그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정말 신선할까?'이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고, 방울 토마토에서 오랫동안 냉장 보관이 되어 눅눅해진 식감이 혀에서 전해져 오게 되면 '아, 이 집은 재료가 역시 신선하지 않아. 이제 안 와야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더러 있지 않을까?


 괜히 여러 레스토랑에서 가격이 비싼 레스토랑이 괜히 비싼 게 아니었다. 그리고 책 <음식의 언어>에서 비싼 레스토랑과 그렇지 중저가 레스토랑의 재미있는 차이도 읽어볼 수 있었다. 비싼 레스토랑일수록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적고, 중저가 레스토랑일수록 메뉴가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레스토랑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은 '진짜 맛집'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어중간한 식당에는 메뉴가 쓸데없이 많은데, '맛집'으로 진짜 유명한 곳은 메뉴가 몇 가지 없다. 방송에 나왔다고 '맛집'이라고 말하는 음식점에 메뉴가 너무 많다면, 우리는 한 번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의 언어, ⓒ노지


 아래에서 하나 더 <음식의 언어>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을 읽어보자. 아래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은 음식의 메뉴를 통해 어떤 의미를 해석해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기호 식품 '케첩'이 건너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글의 일부분이다. 이건 <음식의 언어>에서 읽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였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에서 생산된 고급 비단, 목면, 도자기, 아락, 콩, 진귀한 케첩을 사기 위해 엄청난 양의 페소 은화를 가져왔다. 찰스 만이 자신의 저서 <1493년>에서 주장했듯이, 유럽이 신세계를 그토록 맹렬하게 식민지화하고 수탈한 이유는 아시아 수출품에 대한 유럽의 욕망이자, 은을 향한 중국인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만의 문장을 빌리면, 서구의 입맛과 동양의 생산물의 만남은 우리의 현대적인 "전 세계에 걸친 상호 연관된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케첩에 얽힌 사연 즉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발효 생선 소스부터 일본의 스시 우리의 현대적인 달콤한 토마토 즙액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결국 세계화의 이야기이며, 하나의 세계적 강대국이 몇 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해온 이야기다. 그러나 그 강대국은 미국이 아니며, 그 세기는 우리의 세기가 아니다. 여러분의 자동차 좌석 밑에 떨어진 작은 케첩 봉지는 지난 천 년대의 대부분 기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중국 경제력의 상징이라 생각하라. (p124)


 토마토 케첩하면 떠오르는 건 토마토 케첩 스파게티와 어릴 때 자주 계란프라이를 밥과 함께 비벼 먹을 때 뿌린 토마토 케첩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토마토 케첩의 원산지는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토마토 케첩의 원형이 중국에서 나왔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음식의 언어>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몰랐던 음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추적해서 책을 읽는 독자가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레스토랑 메뉴에 사용되는 프랑스어와 미국 영어, 영국 영어의 혼합에 대한 비밀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평소 레스토랑을 이용한다면, 책은 더 재밌을지도?



 정리해보자. <음식의 언어>를 읽으면서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쉽게 이해했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책의 소재로 사용된 '레스토랑'과 '음식'은 대체로 내가 거의 접하지 못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뭐, 이건 저자가 배경이 달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부분적으로 쉽게 이해하고, 책을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음식의 언어'는 상당히 익숙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싸거나 중저가의 레스토랑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에게 익숙한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피자집을 예로 생각해도 충분히 저자의 취한 방식을 통해 접근해서 해석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여러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배달 주문하는 피자집에서도 메뉴에 대한 설명이 쓸데없이 긴 경우가 있고, 괜히 프랑스어나 영어가 들어가서 발음하기 어려운 메뉴도 있다. 그 메뉴를 보면서 '이 언어가 가진 비밀은 무엇일까?'이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책 <음식의 언어>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하는 언어만이 아니라 우리가 평범한 곳에서 접하는 언어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뜻밖에 어떤 음식의 출발점을 찾다 보면 우리는 알지 못했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달콤하면서도 약간 떫은 맛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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