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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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조이), 내 삶의 진정한 기쁨은 내면에서 찾아온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슬슬 더워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잠시 조용히 공원을 산책하고 있으면, 꿀벌이 열심히 봄꽃 사이로 꿀을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면 우리는 너무나 지금 이 순간이 평화롭고 즐겁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 소소한 기쁨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요?


 우리가 늘 치열하게 사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행복을 바라며 치열해질수록 더 행복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루 24시간 스케줄을 빽빽하게 채워서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서 노력해도 절대 우리는 그 시간을 즐길 수 없습니다. 행복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거든요.


 오늘 소개하고 싶은 <JOY 기쁨의 발견>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인간은 행복을 발견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문화나 교육,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단순하게 기쁨과 만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매우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찾기가 어렵습니다. 손 위에 앉았다가 금세 날아가버리는 나비처럼 말입니다. 행복의 궁극적인 원천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돈도, 권력도, 지위도 아닙니다. 제 친구들 가운데 몇몇은 백만장자입니다만, 그들은 아주 불행합니다. 권력과 돈은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니까요. 외적인 성취가 내면의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본문26)


 윗글은 달라이 라마가 <JOY 기쁨의 발견>의 저자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짧게 한 이야기입니다. 라마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추구해야 할 것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쁨과 행복을 갉아먹는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죠. 어떻게 하면 우리는 나아질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 저는 <JOY 기쁨의 발견>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라는 두 거장과 인터뷰어 에이브람스가 삶의 여러 이야기를 묻고 답하며 적은 책입니다. 책이 조금 낯설 것 같았지만, 무척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행복해지고 싶은 오늘 같은 봄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읽은 내 삶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제 마음을 살펴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고,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바라보는 공부와 연습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내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작은 그릇을 놓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사회의 불평등이 깊어 지면서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죠. 이러한 경쟁 속에서 우리 사회는 '행복론'을 통해 행복을 찾고 있지만, 좀처럼 내면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멈추는 순간 놀라움이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 조금 더 주변 사람을 보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죠. 삶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닙니다. 서로 유대감을 가지고 상호의존하면서 살아가는 게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말이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현실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오늘을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바깥을 향하게 됩니다.



 돈을 조금 더 많이 벌게 되면 빚 없이 살 수 있고, 조금 더 외모가 뛰어나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죠.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욕심입니다. 저 또한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돈이 있고, 조금 더 외모가 반반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만약 조금 더 돈이 있으면 저는 아직도 분할 납부로 납부하는 등록금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조금 더 외모가 반반하면 자신 있게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만약에'라는 가정은 언제나 우리가 눈앞의 고난과 역경을 부정하는 데에 가장 빈번히 쓰는 방법이죠.


 계속 이렇게 좌절을 반복하면 우리는 자신감을 잃게 되고, 낮아진 자존감을 쉽게 회복할 수 없게 됩니다. 말로 하는 건 쉽지만 언제나 행동이 어려워 우리는 스스로 책망하게 됩니다. 지금 제가 가진 외모와 목소리 등에 대한 열등감 또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머리는 알아도 마음이 계속 흔들리거든요.


 <JOY 기쁨의 발견>에서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우리 앞의 고난과 역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그러운 영혼을 갖기 위해서는, 실패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고난, 아니면 최소한 좌절이라도 겪어보아야 해요. 우리가 선택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인한 고통들이요. 인생은 직선으로만 쉽게 갈 수는 없어요. 우리의 길을 이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지요."

대주교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겪어 유약해진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아주 어릴 적 그가 겪었던 고통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난은 아마도 근육과 같을 거예요. 말하자면, 좋은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육을 손상시켜야 하잖아요. 근육에 저항을 주면 근육이 커지지만, 축 처져 있으면 오히려 줄어들죠. 그저 앉아만 있으면 가슴팍을 넙힐 수 없어요. 산을 올라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방법이지만요. 본성은 가만히 앉아 있고 싶어해요. 그 본성을 따라서 소파나 방바닥에만 널브러져 있으면 결과는 뻔하잖아요. 이런 걸 보면 정말 육체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과 너무나 동일해 놀라울 지경이에요. 우리의 인정 어린 마음이 시험당할 때,마음 깊은 곳에서 인정을 키우는 거예요." (본문 181)


 우리의 정신 또한 육체와 같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아마 우리 자신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실패해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제법 있을 테니까요. 대표적인 사례가 자전거 타기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몇 번이나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고난과 역경 또한 그렇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하는 초긍정적인 마인드가 우리에게 필요하죠. 이 사실은 늘 머리로 이해하실 거예요 하지만 머리로 알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약간 다르게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자신에게 향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본다면, 조금 더 유연하게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나 문제가 주이지더라도 그것을 앞과 뒤, 양옆, 위와 아래 적어도 여섯 가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 대해 보다 완전하고 총체적인 관점을 갖게 하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보다 건설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본문 227)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갇히면 우리는 가까운 곳만 보고, 자신의 경험을 더 큰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도전에 맞닥뜨리면 우리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감정이 앞서게 되죠. 그래서 어떤 기회가 주어져도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렇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글을 쓰는 저 또한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만약 그때 좀 더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행동했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라고 후회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늘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마주하는 건 어렵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내면의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면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각도가 아니라 다양한 각도의 시선이 필요하죠.


 그 시선에는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일도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그냥 획 그어버리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죠. 처음부터 어깨를 늘어뜨린 채,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와 처음부터 웃으며 하는 일의 결과는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다르니까요.


 오늘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이 글을 적는 저, 그리고 이후 이 글을 녹음할 신날새 님도 모두 진정한 기쁨을 통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으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라는 소년의 질문에 답한 달라이 라마의 답을 남깁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주 슬픈 일이지요.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관대할 수가 있겠어요?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은 선하고 긍정적인 것임을 계속 일깨워줘야 해요. 이것이 우리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 있도록 말이지요. 우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집중하면 두려움, 불안, 걱정을 낳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바로 인류 전 세대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면 용기와 삶의 목적을 갖게 될 거예요.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깨닫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워질 수 있어요. 만약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겠죠. 만약 모든 것이 훌륭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더 발전하고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거예요. 티베트의 격언 가운데 '지혜는 빗물과 같다'는 말이 있어요. 지혜와 빗물 모두 낮은 곳으로 모인다는 얘기지요. 또 이런 말도 있어요. '봄에 꽃이 피어날 때면, 어디부터 개화가 시작될까? 산꼭대기일까?, 아니면 계곡 아래에서부터일까?' 처음 성장은 낮은 곳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겸허한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면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여든 살을 먹었지만, 여전히 절 학생으로 여긴다고요. (본문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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